저 해가 떠오를 때
안 도 현
저 해가 떠오를 때
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
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
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
저 해가 떠오를 때
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, 하는 울음소리로
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
내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사랑해요, 라는 말이
당신에게 닿게 하소서
저 해가 떠오를 때
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
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
남을 위해 한 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
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
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
부끄럽게 하소서
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소서
큰 것보다는 작은 것도 좋다고,
많은 것보다는 적은 것도 좋다고,
높은 것보다는 낮은 것도 좋다고,
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도 좋다고,
저 해가 떠오를 때
그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
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잊어버린
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
물이 차 오르게 하소서
꽃이 피게 하소서
그리하여 저 해가 떠오를 때
얼음장을 뚫고 바다에 당도한 저 푸른 강물과 같이
당신에게 닿게 하소서